크리스 아벨론 인터뷰: 지망생 시절부터 블랙 아일, 옵시디언, 그리고 현재의 프리랜서 시기까지

chris-avellone-t게임즈TM이 크리스 아벨론의 20년 넘는 경력을 조명하는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첫 컴퓨터 게임 경험부터 TRPG 디자이너 지망생 시절, 인터플레이/블랙 아일, 옵시디언, 그리고 현재의 프리랜서 시기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재밌는 일화들, 아벨론의 생각들이 한국어 매체나 블로그에서는 별로 다뤄진 적이 없는 것 같고, 개략적이지만 전반적으로 아벨론의 프로필을 알아볼 수 있는 인터뷰라서 오랜만에 번역해봤습니다. 크리스 아벨론 개론 2016년판이라고 해도 되겠군요.

특히 이 인터뷰에서는 아벨론이 인터플레이/블랙 아일과 옵시디언의 경영진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과 후회, 지금의 프리랜서 생활을 즐거워 하는 이유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수동 공격?)

=====

첫 비디오게임 경험은 뭐였나?

TRS-80(4K)용 《헌티드 하우스》. 거짓과 기만이 가득한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이었고 오늘날까지도 플레이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 레벨까지 갔는데 무슨 동사나 명사 조합을 해도 이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영원히 마법의 검에 관심 가지지 않게 된 계기가 됐다.

경력에서 스토리텔링과 문학 쪽 배경이 강한데 학교에서 배웠나?

나는 토마스 제퍼슨 과학고등학교에 갔는데, 덕분에 내가 똑똑하다는 생각을 절대 할 수 없게 됐다. 나는 거기서 하위 10%였고 똑똑한 애들에게 집단으로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주먹 말고 성적으로 얻어맞는 거라 덜 아팠지만 더 오래 아프더라. 졸업 후에는 대체로 빈둥거리면서 돈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남는 시간 대부분은 출판사들에 보내는 TRPG 모듈을 썼다.

D&D의 팬이었나?

처음에는 그랬다. 처음으로 한 캠페인(당시에는 기본이었던 ‘더 킵 온 더 보더랜드’를 제외하고)이 ‘어게인스트 컬트 오브 더 렙타일 갓’과 거대한 모듈인 ‘템플 오브 엘리멘탈 이블’이었다. ToEE는 결판이 나지 않고 몇 년을 가다가 파티가 엘리멘탈 노드 중 하나로 사라져버리고 나서 우리 모두 이게 가장 똥 같은 캠페인이라고 결론 내리게 됐다. 그 후로 D&D는 제쳐두고 ‘슈퍼월드’, ‘챔피언스’, ‘워해머: 판타지 롤 플레이’로 욕구를 채웠다. 하지만 D&D는 상호작용하는 스토리를 가능하게 해줬다는 점과 규칙이 있는 가장 놀이였다는 점에서 큰 영감을 줬다.

그러다 어떻게 비디오게임 업계로 가게 됐나?

히어로 게임즈의 내 편집자가 인터플레이의 D&D 부서인 드래곤플레이에 면접을 잡아줄 때 추천 보너스로 300달러어치 소프트웨어와 트레이드됐다. 처음으로 (마지막도 아니고) 매춘부가 된 기분이었고 정말 비참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프랜차이즈의 게임들을 만들 수 있어서 그나마 밤에 잠 자는 데 도움은 됐다.

내러티브 외에 게임 디자인과 코딩에도 관심이 있었나?

게임 마스터링과 관련된 건 뭐든지 하고 싶었다. 내러티브 이외 분야는 대체로 다른 사람들이 맡았기 때문에 다른 분야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마 그게 잘된 일이겠지만 적어도 다른 걸 시도해볼 기회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거다. 한 때 BASIC 코딩을 했던 적은 있지만 썩 잘하진 않았다.

인터플레이에서 처음으로 작업한 큰 게임은 뭐였나?

《디센트 투 언더마운틴》. 타이틀을 만들 때 역할과 책임의 정립, 위에 있는 사람들의 지원이 중요함에 대해 많은 걸 배웠다. 그리고 《폴아웃 2》에 참여했는데, 안타깝게도 1편(내가 해본 최고의, 가장 혁신적인 RPG라고 생각한다) 같은 리더십이나 디자인 감독을 받지 못한 프로젝트였다. 버그들과 함께 그런 부분에서 폴아웃 세계가 어려움을 겪었다고 본다. 준비되기도 전에 출시하라는 압박이 컸다. 《폴아웃 2》를 사랑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프로젝트 관리가 더 잘 됐다면 좋았을 거다.

아마 이 시기에 당신이 참여한 게임 중 가장 많은 사람을 받는 것들이 인피니티 엔진 게임들일 거다.

그 엔진에 대한 찬사는 바이오웨어가 받아야 한다. 나는 그 엔진이 없었다면 블랙 아일은 그 게임들 대부분을 만들지 못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도 여러 차례 증명됐다. 엔진 만들기는 어려운 일이고 바이오웨어는 좋은 엔진을 만들었다.

발더스 게이트와 아이스윈드 데일에 참여하는 한편 가장 큰 역할을 한 게임은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였다.

예쁜 이야기는 아니다. 인터플레이는 플레인스케이프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로 뭘 할지 몰랐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만들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결국에 하게 된 게 ‘이 라이선스랑, 인피니티 엔진이랑, 보통 이 엔진으로 게임 만들 때보다 절반의 인원을 가지고 게임을 만든다. 시작!’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좋았다. 제작이 시작되기 한참 전에 스토리를 쓰고 다듬을 수 있었다. 작고 열정적인 팀이 있었다. 사람들이 그 테마와 방향성에 좋은 반응을 줘서 기뻤다. 반응이 안 좋을까봐, 그래서 일자리를 잃을까 무서웠었다.

《발더스 게이트: 다크 얼라이언스》는 당신이 전까지 맡았던 것들과 다른 액션 지향의 콘솔 게임이었다. 어떤 역할을 했나?

나는 스토리를 했다. 스노우블라인드가 개발한 기술은 자랑스럽지만 내 상사들이 이리저리 밀고 당겼던 스토리는 자랑스럽지 않다. 상사들이 하는 스토리 제안들이 점점 많아져서는 스토리를 일찍 작업하는 게 오히려 일종의 형벌이 된다는 걸 깨닫게 될 정도였다. 가장 난해한 제안들의 타겟이 됐기 때문이다. 어쨌든 원래 계획한 스토리와 규모는 빛을 보지 못했고, 다른 무엇보다 먼저 완성했던 스토리가 아이러니하게도 최종적으로는 빈약하고 서두른 모양새가 됐다. 근본적인 게임플레이가 부족한 스토리를 만회해줄 수 있어서 기뻤다.  내 한계를 인정하고 나는 콘솔 액션 RPG의 리드 디자이너에 맞지 않는다고 깨닫고 나서 후속작으로는 데이비드 말도나도를 추천했다.

인터플레이가 어떻게 잘못 되기 시작했다고 보는가?

인터플레이의 마지막 5년은 별로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콘솔의 폭발적 성장을 놓쳐서 따라잡으려고 했었고, 블랙 아일은 자기만의 엔진을 만들지 못하면서 확실히 타격을 받았다. 리스테크 같은 엔진을 활용하려는 시도도 제대로 되지 않아 ‘톤’을 비롯한 여러 타이틀이 취소됐다. 몇 년이 낭비됐고 계속 그런 일이 일어나면서 사기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이스윈드 데일 시리즈가 매출을 냈지만 바이오웨어 이후로는 달리 새로운 성공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아윈데 시리즈는 짧고 재미있는 프로젝트긴 했어도 RPG 장르의 발전에는 별 역할을 못 했다. 간신히 물에 떠있는, 아니 그보다는 천천히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유쾌한 시기는 아니었다.

‘발더스 게이트 3’와 ‘반 뷰렌'(폴아웃 3)이 취소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고 전자의 취소 이후에 당신은 인터플레이를 떠났다. 무슨 일이 있었나?

내가 있던 동안에 반 뷰렌은 종이 프로토타입(지역과 시스템, 스토리 부분에서 상당히 진행됐다) 이상으로 별로 나아가지 못했다. 팀원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조차도 계속 《라이온하트》 쪽으로 끌려갔는데 블랙 아일은 거기서 내가 무슨 역할을 할지 제대로 정하지도 못했다. 그 쪽에서 나오고 겨우 반 뷰렌을 작업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발더스 게이트 3의 프리프로덕션 작업으로 끌려갔다. 별로 즐거운 작업은 아니었다. 발더스 게이트 3가 취소되고 나서 나는 인터플레이를 떠났고 그 시점 이후로 진행된 반 뷰렌 작업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한 디자인 작업은 언젠가 써먹을 때를 대비해 고이 간직했다. 그 시점에 나는 개발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작업해도 한 순간에 모두 날아갈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렇게, 비록 반 뷰렌을 사랑했지만 폴아웃을 인터플레이에 맡겨두고 떠났다. 그리고 잠시 동안 스노우블라인드와 다시 함께 일하면서 《챔피언스 오브 노라스》의 스크립트 닥터를 맡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1년이 안 돼서 반 뷰렌이 취소됐다. 후회가 됐지만 내 잘못도 다른 개발자들 잘못도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다른 유일한 후회라면 스노우블라인드와 잠깐 프리랜서로 일했을 때 계속 프리랜서 활동을 하는 게 훨씬 더 나은 길이었음을 깨달아야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나서 전 블랙 아일 직원들과 옵시디언을 공동으로 창립했다. 가장 처음 만든 게임들이 뭐였나?

《구공화국의 기사단 2》의 리드 디자이너였고 《네버윈터 나이츠 2》의 거의 모든 동료를 썼다. 상당히 가혹한 죽음의 행진이었다. 나는 별로 스타 워즈 팬도 아니었다. 하지만 구공기와 그 세계의 팬이 됐고 ‘현대’ 스타 워즈 세계가 아닌 곳을 탐색하는 기회를 즐기게 됐다. 그리고 스타 워즈 단편 각본 몇 개를 쓸 기회도 얻게 됐고 특히 스타 워즈: 클론 워즈 어드벤처 단편 만화들도 쓰게 됐다. 처음으로 만화를 작업해본 거였는데 내 편집자였던 다크 호스의 데이브 마셜이 자기 시간을 아주 관대하게 내줬고 많은 인내를 보여줬다. 영원히 감사한다.

옵시디언의 가장 유명한 게임은 《폴아웃: 뉴 베가스》일 것 같다.

다시 폴아웃 세계로 돌아가서 인터플레이 당시 몇 년 동안 디자인했던 반 뷰렌의 요소들(장소, 세력, 기술, 심지어 나이트킨의 정신병까지)을 쓸 수 있어서 수 있어 좋았다. 정말 즐겁게 만들었다. 특히 DLC들.

작년에 옵시디언을 떠났다. 이유가 뭔가?

나는 스벤(빈케, 라리안 스튜디오 CEO)이 좋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씬 2》의 파티 관계 시스템이 마음에 든다. 그 게임의 던전 탐험도, 그 작가들도 마음에 든다. 관리자들의 지지와 신뢰를 원하게 되었을 때, 라리안이 줬다. 디자인 요소들을 제안하면 들어준다는 점이 묘한 기분이었다. 꼭 모든 것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그 사람들은 들어준다. 내겐 그걸로 충분했다. 지금 나는 《디비니티: 오리지널 씬 2》에 참여하고 있고 다른 것들은 아직 말할 수 없다. 곧 공개할 수 있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순간들은?

《사우스 파크》에서 처음으로 프로듀서를 맡아봤을 때, 애니메이션 컷씬 공정을 고치면서 온 그 만족감. 그리고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가 출시되고 오래 지나서도,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게임을 즐겨주고 자기들 게임을 만드는 데 영감을 줬다고 할 때.

세월을 거치며 게임 디자이너의 역할은 어떻게 변해왔나?

더 전문화됐다. 내가 업계에 들어왔을 때는 게임 디자이너라는 것도 없었는데 이제는 시스템, 레벨, 내러티브 등 다양한 디자이너들이 있고 모두 계층으로 조직화되어 있다.

게임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줄 수 있나?

지금 당장 모드나 게임을 만든다고 막지 않는다. 만들어라. 공개된 게임 엔진들과 디지털 배급의 세상에서 자기 자신의 의욕을 제외하면 더 이상 별다른 장애물은 없다. 그러니까 가능성에 머무르지 말고 진짜가 돼라. 누구든 RPG 관련해 더 구체적인 조언이 필요하다면 가능한 부분은 언제든 도와주고 싶다. 내 트위터로 말 걸어주면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주겠다.

=====

혹시 그동안 영어로 나온 여러가지 크리스 아벨론 인터뷰 등을 챙겨 읽은 분이라면 익숙한 이야기들일 거고, 여기서는 좀 많이 개략적으로 다루어졌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특히 아벨론이 트위터에서 하는 수동 공격 수위는…

어쨌든 자유의 몸이 된 아벨론의 앞으로의 행보, 그리고 언젠가 언급한 자기만의 팀을 꾸리게 될 때를 기대하고 싶군요.

“크리스 아벨론 인터뷰: 지망생 시절부터 블랙 아일, 옵시디언, 그리고 현재의 프리랜서 시기까지”에 대한 2개의 생각

  1. 아벨론의 인터뷰는 비슷한 부분들이 많지만, 읽을 때마다 RPG에 대한 사랑이 느껴집니다(오글).

    항상 느끼는 거지만, 반 뷰렌에서 시도하려 했던 시스템들을 참 좋아하는 거 같네요. 저번 인터뷰에선 “반 뷰렌 작업은 정말 즐거웠다.”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뉴 베가스에서 반 뷰렌의 요소들을 쓸 수 있어 좋다고 하는군요.

    아벨론이 스벤과 사이가 매우 좋아 보이네요. 개인적으로 라리안에서 아벨론과 스벤이 많은 CRPG들을 만들었으면 좋겠군요.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