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플레잉에 ‘롤플레잉’을: 《서펜트 인 더 스태그랜드》의 퀘스트 설계 철학

서펜트 인 더 스태그랜드》는 얼마 전 공개된 게임플레이 트레일러에서 ‘퀘스트 노가다가 없다’는 점을 특징으로 내세웠습니다.

이 문구와 관련해 지난 주부터 개발자 조 윌리엄스가 자신들이 지향하는 퀘스트 디자인을 RPG 코덱스에서 몇 번의 포스트에 걸쳐 설명했더군요.

간략히 말하면 단위화된 퀘스트를 할 일 목록처럼 자동으로 전달하거나 메인과 사이드를 대놓고 구분하지 않고, 플레이어가 직접 세상을 탐험하면서 자신이 할 일과 방법을 궁리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이 게임을 소개하며 몇 번 언급했던 직접 단서를 정리하고 타이핑해야 하는 저널 시스템과 처음부터 모든 지역에 접근할 수 있는 탐험, 다양한 지식 스킬 시스템과 아이템 활용 역시 이런 철학에서 나옵니다.

좋은 내용이고 최근 나오는 PC RPG에서도 보기 드문 정도라 발언 내용을 추려서 옮겨봤습니다.

  • 우리는 플레이어가 모든 NPC와 이야기해보거나 퀘스트 NPC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시시하거나 중대한 일을 받아먹는 방식의 퀘스트 시스템은 피했다. 그런 시스템은 ‘완수’하지 않으면 잘못 플레이하는 것처럼 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시스템을 좋아하는 것도 취향이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공식화된 퀘스트 주우러 다니기를 피하고 싶었다. 플레이어가 뭘 할 지 해석해야 하는 어드벤처 게임 같은 모험을 만들고 싶었다. 롤플레잉을 강조하고 싶었다.
  • 이 목표를 위해 우리가 가장 흔히 취한 방법은 플레이어에게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개념은 주되 그걸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고 목격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주입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저널에 무엇을 쓰고 문자와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플레이어가 판단하게 해 플레이어가 더 개인적인 모험을 할 수 있게 했다.
  • 가령 포고원에게 “레브가 파괴당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플레이어에게 즉각적으로 미션이 주어지는 게 아니다. 다만 레브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게 되고 ‘가보면 흥미로운 일이 있을 것 같다’ 혹은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안전하겠구나’ 하고 판단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몫이다. 플레이어를 사건이 일어나는 세계 안에 두면서도 사건의 중심에 두지 않는다. 퀘스트 개념은 플레이어가 직접 해나갈 모험의 배경이 된다.
  • 우리는 체크리스트를 비워나가는 방식보다는 테이틀톱 RPG에 가까운 탐험 감각을 좋아한다.
  • 당장 떠올려 보면 《다크랜드》와 《발더스 게이트 1》, 《폴아웃 1》, 심지어 RPG가 아닌 《미스트》 같은 게임들이 플레이어가 직접 탐험할 수 있는 스토리 구조로 설계되었다. 무슨 퀘스트를 따라가야 한다고 과제를 주지도 않고 메인 퀘스트를 뚜렷하게 구분하지도 않는다.
  • 스토리 중심이 아닌 오픈 월드 게임이면서 메인 퀘스트와 사이드 퀘스트를 즉시 이해하고 구분할 수 있게 해 놓는 방식은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스토리 중심의 CRPG나 일본 RPG 같은 경우야 퀘스트 로그나 선형적인 경험을 기대하게 되는 게임이지만, 오픈 월드 게임에서 단순히 머리 위 느낌표를 따라가는 게 전부라면 무척 지루해지기 쉽다고 생각한다.
  • “RPG=퀘스트”라는 전제에 일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퀘스트 추적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식이라면 탐험을 이끄는 내러티브라기에는 좀 단조롭지 않은가? 하다못해 내가 예전에 플레이했던 젤다의 전설 시리즈 중 하나도 내가 얼마나 진행했고 재미를 느끼는지 알려주는 체크박스나 퀘스트 꼬리표를 붙이지 않으면서 수많은 사이드 퀘스트를 가지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 모든 CRPG가 TRPG 같은 경험이어야 한다는 건 아니고 단지 난수나 MMO식 퀘스팅 말고 롤플레잉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 《발더스 게이트 1》과 《폴아웃 1》은 분명 이견의 여지야 있지만 플레이 방식에 따라 퀘스트 사냥과 자발적인 탐험의 경계에 있는 오픈 월드 내러티브를 쓴다. 메인 퀘스트 자체도 플레이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해결할지 직접 궁리하게 함으로써 모험을 롤플레잉한다는 개념으로 제시된다. “워터 칩을 찾아라”는 말만 주고 플레이어에게 그 이상의 정보를 주지 않는 게 뛰어난 디자인인 것이다. 게임 시스템과 내러티브가 하고 싶은 대로 롤플레잉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기대를 준다. 그게 좋은 CRPG 디자인이다.

사랑합니다.

《서펜트 인 더 스태그랜드》는 5월 28일에 출시될 예정입니다.

“롤플레잉에 ‘롤플레잉’을: 《서펜트 인 더 스태그랜드》의 퀘스트 설계 철학”에 대한 5개의 생각

  1. 좋은생각이지만…그러면 더 재밌어질까? 하는 회의도 좀 드네요
    일단 게임 출시하면 플레이해봐야겠습니다

    1. 사람이 어떤 것에 재미를 느끼는 기준을 아주 간략하게 축약해서 1) ‘자기 취향에 맞는가’, 2) ‘잘 만들어졌는가’ 두 가지라고 본다면, 이 내용은 1번 영역에 가깝죠.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 재미있어지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퀘스트 체크리스트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소수라고 해도요. 개발자도 그런 사람이 다수는 아니란 걸 알면서 자기도 그런 사람이니까, 그래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사줄 사람은 있을 것 같다는 판단에 만든다는 거고요.

      물론 2번 기준이 얼마나 받쳐줄 것이냐, 1번은 충족하는데 2번이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냐, 차라리 체크리스트로 만드는 게 나은 수준일 것이냐 이건 나와봐야 알겠죠.

  2. 제가 이거에 왜 후원 안했을까요 ㅠㅠ..

    이 게임 개발글을 들어보면 참 좋은 게임이 나오겠구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지향하는 바가 기존에 나온 웨이스트랜드 2나 디비니티 오리지널 씬 보다도 정확하게 기존 게임들의 장점을 짚은거 같습니다.

    다만 실시간은;; 익숙치 않아 재밌을까 싶습니다.
    다크랜드나 다른 실시간 일시정지 전투 게임들이 흥했으니 재밌을수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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