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시디언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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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RPG 팬들의 사랑과 증오를 한 몸에 받는 RPG 개발사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가 걸어온 10년을 조명한 작년 12월 기획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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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스 어크하트는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어크하트와 그의 회사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는 ‘새로운 게임을 위한 킥스타터 캠페인의 개시’라는 회사 역사상 가장 커다란 한 걸음을 내딛으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뭔가 잘못 되었다. 모금 페이지를 공개하는 버튼이 회색으로 되어 있었다. 클릭할 수가 없었다. 30분 안에 모금 캠페인을 시작해야 했다.

다행히도 어크하트는 킥스타터의 커뮤니티 디렉터인 신디 우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항로를 바꿔놓을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우는 시스템에 일시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고 몇 분 뒤 문제는 수정되었다. 버튼이 다시 나타났다.

버튼을 클릭했다. 몇 초 기다렸다. 새로고침을 눌렀다. 벌써 2,000달러가 들어와 있었다.

팬들은 언제나 옵시디언에 사랑과 증오를 교차한 시선을 보내왔다. 그들이 이제 다시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드래곤플레이는 머저리 같다’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알파 프로토콜과 네버윈터 나이츠 2처럼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 보석들을 만들어 부당대우를 받는 천재들? 아니면 버그로 가득찬 폴아웃: 뉴 베가스와 미완의 스타 워즈: 구공화국의 기사단 2에서 보이듯 개발력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 당신이 옵시디언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들이 걸어온 이야기는 꽤나 흥미진진하다.

옵시디언의 이야기, 실패와 성공이 교차하는 가슴 아픈 이 이야기는 웨이스트랜드와 디센트 같은 게임으로 잘 알려진 퍼블리셔, 바로 인터플레이라는 이름의 회사에서 시작한다. 19996년, 인터플레이의 경영진은 롤플레잉 게임 부서를 확장할 구상을 했고, 퍼거스 어크하트라는 이름의 젊은 개발자에게 그 운전대를 맡기게 되었다.

“제가 그걸 맡게 된 때가 스물 여섯이었습니다.” 햇살 좋은 캘리포니아 주 어바인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어크하트는 내게 말했다. 옵시디언의 CEO이자 다섯 명의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어크하트는 나에게 자기 회사의 문화와 역사를 이야기하며 그날 오후를 보냈다. 그 이야기의 시작이 인터플레이의 그 작은 부서였다.

“부서명에 드래곤플레이란 이름을 붙이려고 하더군요. 듣자마자 참 머저리 같은 이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크하트는 웃으며 말했다. “뒤에 뭔가 ‘플레이’를 붙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이런 농담이 있었죠. 인터플레이의 성인 버전은…”

그는 내가 눈치채길 기다리며 몇초간 말을 맘추었다. 내가 눈치채지 못하자,

“전희(foreplay)요!”

당연히 그런 이름은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의 랜드마크에서 이름을 따와 ‘블랙 아일’이라 이름 붙였고, 어크하트의 리더십 아래 이 스튜디오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몇 편의 아이소메트릭 RPG를 만들었다. 블랙 아일의 경력에는 아이스윈드 데일과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폴아웃 2 같은 히트작이 있었다. 바이오웨어가 개발해 역대 최고의 롤플레잉 게임으로 꼽히는 발더스 게이트와 그 후속작의 퍼블리싱을 돕기도 했다.

그런데 2000년이 되어 모회사 인터플레이에 문제가 생겼다. 돈 문제였다.

“우리는 잘 하고 있었습니다.” 어크하트가 말했다. “우리가 만든 게임들이 돈을 많이 벌었고 바이오웨어 게임들은 더 많은 돈을 벌었죠. 블랙 아일은 대단했습니다. 정말 잘 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터플레이는 잘 되지 못 했다. “시장의 전환기 문제였는지 투자를 잘못 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어크하트는 말했다. 블랙 아일의 모회사는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결국 재정 문제로 인터플레이는 거의 모든 블랙 아일 게임이 사용했던 던전 앤 드래곤 라이선스를 잃고 말았다.

이것은 어크하트의 팀에게도 어려움을 불러왔다. 그들은 이미 발더스 게이트 3: 블랙 하운드를 개발하는 데 상당한 시간들 들였다. 그런데 더이상 D&D와 관련된 코드와 아이디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되버린 것이었다.

“D&D 게임 만드는 게 참 좋았기 때문에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어크하트가 말했다. “발더스 게이트 3는 1년, 한 1년 반 동안 만들고 있었는데 그렇게 되버린 겁니다…문 밖으로 내차인 거나 마찬가지였죠.”

(발더스 게이트 3는 몇 년 뒤 옵시디언에서 다시 제작하게 되지만, 또다시 빛을 보지 못했다.)

인터플레이에는 더이상 가망이 없어보였다. 그래서 어크하트와 그의 팀은 떠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저희가 아직 30대 초반이었습니다. 늙어서 40이 되기 전에 회사를 시작할 기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는 크리스 아벨론과 크리스 존스, 크리스 파커, 다렌 모나한과 함께 나와 공동으로 회사를 창립했다. 회사의 이름은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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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시디언의 CEO 퍼거스 어크하트는 2003년 창립이래 회사를 운영해오고 있다.

방귀 구름의 벽

어바인 시가지에 위치한 현대적인 빌딩 2층에 자리한 옵시디언의 스튜디오는 보드 게임과 소파, HD TV로 가득해 호화로워 보였다. 사무실마다 재미난 그림과 게임 스케치로 도배되어 있었다. 잠시 멈춰서서 사우스 파크: 진리의 막대에 쓰일 공격 애니메이션 그림을 쳐다보지 않고 지나가기는 어려웠다. 직원들에게 진동하는 딜도 검과 방귀 구름 스케치를 걸어놓도록 해두는 회사가 얼마나 되겠는가. 여기서는 그게 일이다.

사무실은 게임 프로젝트 별로 나뉘어지는데 지금은 세 부서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사우스 파크, 다른 하나는 킥스타터를 성공한 프로젝트 이터니티, 나머지 하나는 제작 극초기 단계에 있는 미공개 게임을 위한 부서였다.

복도를 걸어가면서 어크하트는 멋진 물건들을 보여주었다. 괴이한 로봇 발톱으로 음료를 나눠주는 자판기, 지금은 고장난 옵시디언 커스텀 아케이드 머신, 섀터드 스틸 도시락통, 발더스 게이트 플라스크. 그러다 우리는 아이스윈드 데일 2와 네버윈터 나이츠 2 같은 RPG의 개발을 이끈 디자이너 조쉬 소여와 마주쳤다. 그는 키가 컸고 온몸이 문신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여기가 조쉬 소여의 사무실입니다.” 어크하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소여의 책상 위에 걸려있는 인형 무리들을 가리켰다. “소여의 텔레토비들이죠.”

“텔레토비 아니에요!” 소여가 소리쳤다. “피크민이거든요!”

어크하트가 웃었다. 그는 쾌활하고 에너지 넘치는 남자였다. 나는 그가 사무실마다 돌아다니면서 직원들과 수다와 만담을 나누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낼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복도에서 직원들을 지나칠 때마다 웃으며 농담을 했다. 게임 스튜디오를 책임지기에는 너무 좋은 사람 같아보였다.

회사에는 업무에 방해되기에 충분할만큼 인상적인 보드 게임 컬렉션이 갖춰져 있었다.
회사에는 업무에 방해되기에 충분할만큼 인상적인 보드 게임 컬렉션이 갖춰져 있었다.

날개를 펴다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를 회사로 등록하고나서 어크하트가 처음 했던 일은 게임 퍼블리셔들을 찾아 이 신생 개발사에게 돈을 줄 곳이 어디인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게임을 만들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들은 EA와 이야기했다. “EA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잊어버렸습니다.” 어크하트가 말했다.

유비소프트와 이야기했다. “마이트 앤 매직 게임을 만들뻔 했어요.” 어크하트가 말했다. 일은 성사되지 못했다. 유비소프트는 옵시디언 대신 아케인 스튜디오라는 회사(2012년의 히트작 디스아너드를 만든 회사)와 계약해 다크 메시아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을 만들었다. 어크하트는 유비소프트와 아케인 모두 프랑스 회사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매년 유비소프트에 연락해서 ‘마이트 앤 매직 게임 만들고 싶습니다’ 합니다. 그러면 그쪽에선 ‘네, 알고 있습니다’ 하죠.”

테이크투와 퓨처블라이트라는 이름의 게임을 만들자는 이야기도 했었다. “네버윈터 나이츠 엔진을 사용해서 폴아웃 같은 게임을 만들려고 했었습니다. 멋지겠다 싶었죠.”

이 게임은 현실화될 뻔 했지만 콘솔 전환기의 희생양이 되었다. “2003년은 사람들이 PC의 미래를 굉장히 걱정하던 때였습니다. 엑스박스가 PC를 끝장낸다 그런 것보다는, 앞으로 또다른 엑스박스가 올 거라는 게 문제였죠.” 결국 테이크투는 패스했다.

그러다 당시 루카스아츠 사장이던 시몬 제프리에게 연락을 받았다. 게임 하나 만들어보자는 이야기였다.

“저희들은 액션 RPG 스타워즈 게임을 만들면 어떠냐고 했습니다. 일인칭 라이트세이버질에 R2D2가 있는 파티 기반 액션 RPG를 만들면 멋질 거라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크하트가 말했다.

“그런데 ‘그것 참 멋진 아이디어네요. 그런데 구공화국의 기사단 2 만드는 건 어때요?’ 라고 답하더군요.”

완벽해 보였다. 바이오웨어가 개발한 구공기 1편은 루카스아츠에게 쏠쏠한 프로젝트였고, 그들은 2004년 크리스마스에 후속작을 내고 싶어했다. 바이오웨어는 스타워즈가 아닌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고, 옵시디언의 개발자들은 구공기에 사용된 기술과 친숙했다. 2003년 가을, 계약은 성사되었다. 옵시디언은 2004년 연휴 출시까지 15개월을 부여받았다.

결국 이 15개월이란 시간이 문제가 되었다.

미완공화국의 기사단

구공화국의 기사단 2가 출시된 뒤 거의 8년이 지난 올해 7월, 모더들이 게임을 완성하는 과업을 완수했다. 잘려나갔던 것들을 모두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2004년 12월에 출시된 구공기 2는 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었다. 시간의 제약으로 옵시디언은 상당량의 콘텐츠(행성, 장면, 스토리)를 잘라서 편집실 바닥에 쏟아야 했다. 나중에 솜씨 좋은 모더들이 옵시디언이 게임의 소스 코드에 남겨놓은 콘텐츠를 발견해서 복구했다. 하지만 2004년 당시에는 모두 잘려나간 상태였다.

대체 왜 잘려나간 걸까?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많은 일이 있었는데 누가 나쁜 맘을 먹었다거나 못된 짓을 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크리스마스에 완성되도록 개발을 진행중이었습니다. 게임이 잘 나왔죠.” 어크하트가 말했다. “루카스아츠 내부에서도 우리가 이 정도까지 잘 만들어서 놀란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루카스아츠 안에서 ‘이 신생 개발사는 신생 개발사가 다 그렇듯이 일을 망칠 거다’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2004년 초에 게임을 살펴보고 감탄한 거죠. 그쪽 QA가 플레이하면서 이거 가능성이 있으니 시간을 더 줘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해로 출시일을 옮기게 되었어요.”

어크하트는 출시일이 옮겨져서 굉장히 기뻤고 새로운 2005년 출시일에 맞추어 프로젝트 스케줄을 바꾸었다. 하지만 경영자들을 상대할 때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칙을 잊어버렸다. 모든 것을 서면으로 기록하는 것.

“저희 쪽에서 계약 변경을 확실하게 해놓지 않은 겁니다.” 어크하트가 말했다. “그러다 E3 이후에 재정적으로 어떤 변화가 생겼죠.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모릅니다. 호출을 받았는데…크리스마스까지 완성하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는데, 누가 나쁜 맘을 먹었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그런 일이 생긴 거에요. 저희한테도 계약을 서면으로 바꾸지 않았다는 큰 책임이 있죠. 그래서 결정을 해야했습니다. 망치거나, 끝내거나.”

그들은 신생 개발사 입장에서 퍼블리셔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고 다음에도 함께 일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옵시디언은 눈을 꾹 감았다. 게임을 한 번 살펴보고 자를 수 있는 부분을 잘랐다. 상당량의 장면과 퀘스트, 심지어 전체 지역 하나(드로이드 행성 M4-78)를 자르기도 했다. 제대로 버그 테스트를 할 시간조차도 없었다. 다만 어크하트는 사람들이 구공기 2에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구공기 2를 이야기할 때면 사람들은 이래요. ‘구공기 2는 6초에 한번씩 다운된다’고.” 어크하트가 말했다. “6초에 한 번 다운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완벽하게 플레이 가능해요. 대부분은 사실상 버그에서 자유롭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메일 중 하나가 이겁니다. ‘구공기 2의 엔딩에 얼마나 화가 났는지 말해주고 싶네요. 세 번째 플레이 했는데 말이죠…'”

어크하트는 웃었다. “그것 참…세 번이나 플레이했다면 그렇게까지 나쁘다고 할 수 없잖아요!”

백설공주 스핀오프

2004년 말, 구공기 2를 마무리하던 옵시디언은 아타리 쪽 사람들에게 연락을 받았다. 아타리는 인터플레이가 잃은 던전 앤 드래곤 라이선스를 습득한 회사였다. 아타리는 2002년에 네버윈터 나이츠를 출시했다. 그들은 이제 후속작을 만들고 싶었고 어크하트는 기쁘게 수락했다.

2005년의 옵시디언은 안정적이었다. 구공기 2의 문제가 있었지만 회사는 직원을 50여명까지 늘리며 성장했다. 어크하트는 여러 퍼블리셔들과 이런저런 게임 만드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퍼블리셔 중 하나가 옵시디언에게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프리퀄 게임을 만들어 달라고 한 디즈니였다. 줄여서 난장이라고 불린 이 게임은 백설공주의 일곱 난장이를 중심으로 하는 엑스박스 360과 PS3용 3인칭 액션 게임이었다. 마지막에는 적대자를 마법 거울 속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새로운 이야기가 있었다.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어크하트가 말했다. “굉장히 멋진 프로토타입을 내놨었다고 생각해요. 1년 정도 만들었습니다. 팀에서 만드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던 게임 중 하나죠. 그런데 불행하게도, 업계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지만 퍼블리셔의 전략이 바뀌었습니다.”

이 전략 변화는 디즈니의 CEO 교체에 기인했다. 갑자기 디즈니는 백설공주 프리퀄 제작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디즈니는 백설공주는 손댈 수 없다고 말했다. 게임은 취소되었다.

가슴 찢어지는 경험이었으나 다른 많은 게임 개발사들처럼 옵시디언도 그런 감정에 조금씩 익숙해져갔다. 게임은 언제나 덧없다. 돈을 어디에 던질지 퍼블리셔들은 항상 마음을 바꾼다. 게임 트렌드는 달마다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다. 그래서 옵시디언 같은 독립 개발사들은 지리멸렬해야 한다. 결국 대부분 바닥에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가능한 많은 공을 가지고 저글링을 해야 한다.

“저희는 많은 도전을 합니다. 독립 스튜디오라는 건 이렇게 흥미로운 일이죠. 저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해요. 당신이 독립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사람이고 누구한테 일을 제안받는다면, 받으세요. 받으세요. 그 결과는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둘 중 하나니까요. 그게 우리가 배운 겁니다.”

다음 몇 달간 옵시디언을 맞은 것은 배부른 쪽으로 보였다. 2005년 말, 회사가 네버윈터 나이츠 2를 마무리하고 있을 때 세가 쪽 사람들이 완전히 새로운 오리지널 RPG를 해보자고 연락해왔다. 문제는 옵시디언에 남는 손이 없다는 것이었다. 신작에 착수할 인원이 없었다.

“세가 쪽에서는 ‘그럼 그 쪽에서 컨셉을 짜오면 같이 계약을 협상해보고 여유가 생길 때 시작하는 건 어떠냐’고 하더군요. 우리는 그래도 괜찮은데 그쪽에서는 시간 낭비하는 방식이 아니냐고 하니까, 괜찮다더군요.”

그래서 컨셉을 마련했다. 스파이 RPG였다. 이름도 만들었다. 알파 프로토콜이었다. 그리고 주인공도 만들었다. 제임스 본드처럼 달콤하고 제이슨 본처럼 명민하며 잭 바우어처럼 격렬한 슈퍼스파이 마이클 쏘튼이었다.

“세가는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드래곤도 없고 페이저도 없는 색다른 컨셉이었다고요. 스파이 RPG를 많이 본 적이 없었죠. 어쩌면 없는 데는 이유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어크하트는 알파 프로토콜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4년의 개발 기간은 길고 고되었으며 팀은 게임의 방향이 분명하지 않다고 느끼곤 했다. 슈팅 게임인가? RPG인가? 잠입 게임인가? 모두 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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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것 같습니다.” 어크하트가 말했다. “그 프로젝트는 한동안 정처없이 떠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잡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죠.”

지금은 옵시디언의 모든 프로젝트마다 필수적으로 마련하는 게임 사양서 같은 게 당시에는 없었다. 사양서는 게임의 정확한 설계와 개발 방향을 명시하는 문서를 말한다. 그리고 어떤 플레이어에게 매력을 주는 게임인지 결정하지도 못했다. 액션 플레이어? RPG 팬? 슈팅 중독자? 어크하트는 이것이 심각한 문제였다고 말했다.

“70% RPG냐 30% 액션이냐, 아니면 46% 액션이고 50%가…이런 논쟁을 시작해도 쓸 데가 없었죠. 이런 건 도움이 안 됐습니다. 우리가 정해야 했던 건 어떤 미션에서 마이클이 어떤 것들을 하고 어떤 수단을 지니고 있는가 였습니다. 자물쇠를 딴다든가, 해킹을 한다든가, 폭탄을 던진다든가, 이렇게 상호작용한다든가, 저렇게 상호작용한다든가.”

세가의 우유부단함도 일부 문제였다. “게임의 어떤 멋진 시퀀스가 있었는데, 그걸 만드는 데 50만 달러 정도가 들어간다고 봤습니다. 모션 캡쳐 등이 많이 필요한 긴 시퀀스였죠. 당시 세가는 그 부분이 별로 게임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봤고 그 50만 달러를 잘라냈습니다. 이해합니다. 우리한테 게임을 만들라고 돈을 내는 쪽은 그 쪽이니까요. 그건 그 쪽의 권리죠.”

몇 번의 연기 끝에 2010년 6월 게임이 출시되었고 비평가들은 게임을 호되게 난타했다. 리뷰어들은 알파 프로토콜을 버그가 가득하고 엉망진창에 방향성이 없는 게임이라고 평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알파 프로토콜은 암암리에 알려지는 히트작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리뷰마다 이 게임을 사랑하는 수백명의 팬들이 답글을 달아 게임 속 선택이 어떻게 모든 장면과 결말에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했다.

“이 게임은 참 이상합니다. 리뷰를 읽어보면 리뷰어는 게임이 울부짖을 때까지 마구 때리고 차고 난리죠. 그런데 이따금 사람들에게 메일을 받습니다. 언젠가는 알파 프로토콜을 세 번, 네 번 플레이했다면서 이 게임이 정말 마음에 든다고 이야기하는 기나긴 메일이 왔었죠…이상해요. 리뷰 결과는 형편 없었는데, 항상 이런 목록에 오릅니다. ‘당신이 플레이해보지못한 최고의 게임들’, ‘꼭 해봐야 하는 저평가 받은 게임들’ 같은 목록이요. 그럴 때마다 이거 좋아해야 하는건가 싶습니다.”

지금 세가는 개발이 험난했던 이 게임의 후속작을 만들 생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특히나 알파 프로토콜이 계속 입소문을 타고 있다. “잘 팔렸습니다.” 어크하트가 말했다. “이 게임으로 세가가 돈을 벌었는지, 잃었는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아직도 계속 팔리고 있단 겁니다.”

“우리가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알파 프로토콜 2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모두들 만들어보고 싶어해요. 이제는 어떤 게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알고 있으니까요…몇 년 뒤라도 세가가 이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아직 알파 프로토콜에 긍정적입니다. 아직도 항상 후속작을 만들어달라는 이야기를 들어요. 어느새 컬트작이 된 겁니다.”

에일리언과의 조우

2006년, 네버윈터 나이츠 2가 완성되고 알파 프로토콜의 개발이 막 시작되던 시기 옵시디언은 세 곳의 퍼블리셔에게 연락을 받았다. 한 회사는 “오리지널 판타지 RPG”를 만들자고 했다. 다른 회사는 당시 엘더 스크롤 4: 오블리비언으로 인기를 얻던 오픈 월드 RPG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싶어했던 EA였다. 그들은 옵시디언에게 오늘로 치면 “스카이림 스타일의 울티마 게임”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 달라고 했었다.

세 번째는 옵시디언과 알파 프로토콜 말고도 또다른 게임, 바로 영화 에일리언을 기반으로 한 RPG를 만들고 싶어한 세가였다. 옵시디언은 이 게임을 선택했지만 여러분이 가게 선반에서 이 게임을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에일리언 RPG는 2009년에 취소되었다. (다만 게임의 멋진 컨셉아트들이 웹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어크하트는 자신들이 세가가 이제껏 본 것 중에 최고로 환상적인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좋은 게임으로 이어나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2009년 2월 어느 금요일 밤, 그들은 세가의 프로듀서들에게 게임 빌드를 보냈다. 월요일 아침, 옵시디언은 에일리언 RPG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세가는 옵시디언이 보낸 프로토타입을 살펴보지도 않았다.

“제일 슬펐던 일은 우리가 만들었던 걸 모두 넘겨주고 나서 벌어졌습니다. 나중에 세가 쪽 프로듀서가 우리 공동창립자 중 한 명인 다렌에게 전화해서 ‘와, 당신들 정말 열심히 했었군요’라고 하더군요.” 어크하트가 말했다.

“우린 ‘네, 뭐 열심히 했죠’, 대답했습니다.”

비바 뉴 베가스

에일리언이 취소되고 네버윈터 나이츠 2의 확장팩 두 개를 완성한 직후, 어크하트는 베데스다의 개발부사장 토드 본에게 연락을 받았다. 베데스다는 막 폴아웃 3를 출시했었고 내부 개발팀은 스카이림 프로젝트를 시작한 참이었다. 베데스다는 옵시디언이 뭔가 해주길 원했다.

“베데스다 쪽과는 처음 이야기를 나눈 게 아니었습니다.” 어크하트가 말했다. “한 번은 스타 트렉을 제안받았는데, 제가 개발사로서 너무 거만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가 스타 트렉 영화가 나오기도 한참 전인 2007년이라 별로 좋은 프랜차이즈가 아니었거든요. 이거 상당히 거만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는 거 압니다.”

이번에 베데스다는 어크하트와 크리스 테일러, 옵시디언 팀도 잘 아는 프랜차이즈에 참여해주길 원했다. 폴아웃이었다.

“우리가 서부 해안을 배경으로 뭔가 만들면 멋지겠다고 하더군요. 우린 당연히 수락했습니다.”

어느 날 밤 어크하트는 다른 네 명의 오너들과 앉아 회의를 시작했다. 그들은 팬들의 요청에 따라 세력에 집중한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즉시 그 배경을 라스 베가스로 결정했다. 심지어 개략적으로 도입부까지 짜냈다.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막에 묻힌 채로 시작하는 것보다 베가스다운 게 어디 있겠습니까?”

베데스다는 그 제안이 마음에 들었고 즉시 뉴 베가스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옵시디언은 2010년 10월에 게임을 출시했다. 게임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많은 비평가와 팬들은 폴아웃 3보다 좋은 게임이라고 평했지만, 버그로 가득차 있었다. 어떤 사람에겐 거의 플레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 이후 많은 문제가 패치된 상태지만 이미 60달러를 지불한 팬들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었다.

“압축된 스케줄이었습니다. 서로 동의한 스케줄이었지요. 저희가 조금 대처하기도 어려울만큼 무리했는지도 몰라요…뉴 베가스를 만들면서 큰 게임을 만들 때 쓸 수 있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QA 관리에 대한 교훈도 얻었죠.”

그들은 차기작인 던전 시즈 3에 그 교훈을 적용했다. 그 게임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버그에서 자유로운 게임이었다. 뉴 베가스 이후 어크하트는 자신들의 그런 평판을 벗어던지자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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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원이 한데 모여서 다시는 버그 가득한 게임을 만들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버그 추적 시스템을 설계했다. 엔지니어들에게 자동으로 크래시 보고를 보내는 프로그램이었다. 어크하트가 말하길 그 전까지의 버그 기록 시스템은 서류가 필요했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사람들이 버그 가득한 게임을 보이지 않을 겁니다. 지금 사우스 파크가 완성과는 거리가 먼 상황입니다만, 벌써 10,000개의 버그를 고쳤습니다.”

“앞으로 버그에서 자유로운 뉴 베가스의 후속작을 내놓고 싶은가요?” 내가 물었다.

“폴아웃을 또 만들고 싶습니다.” 어크하트가 말했다. “엘더 스크롤 세계를 배경으로 해도 좋을 겁니다. 지금 확실히 진행되는 건 없습니다만 계속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폴아웃: 뉴 베가스 2를 해보고 싶습니다. 폴아웃: 뉴 베가스 2는 끝내줄겁니다.”

“뉴 베가스가 멋진 점은 폴아웃과 뉴 베가스가 아주 다른 게임처럼 느껴진다는 겁니다. 같은 엔진에 모든 게 같지만 느낌은 완전히 다르죠. ‘자매품’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릴 것 같네요.”

맷과 트레이

2009년 10월, 어크하트는 생소한 전화를 받았다. 사우스 파크 디지털 스튜디오의 콘텐츠부사장 그렉 캄파니스였다. 그는 사우스 파크의 공동제작자이자 작가, 감독, 연기자인 맷 스톤과 트레이 파커가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며 옵시디언과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괜찮을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어크하트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약속을 잡았지만 뭘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재밌는 건, 캄파니스가 말하길, ‘회사 소개 같은 것도 준비해주세요. 하지만 그 두 사람, 특히 트레이는 당신들이 만든 걸 다 아니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라더군요.”

어크하트는 아이디어를 모았고, 모두 모였을 때 트레이와 맷에게 옵시디언이 RPG를 만드는 방법을 설명했다.

“굉장히 빠르게 설명했는데, 트레이는 ‘알겠어요. 이거 멋지네요. 이거랑 저건 별로네요’라며 따라왔습니다.” 어크하트가 말했다.

모임이 끝날 때 쯤 어크하트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RPG 관련된 건 우리가 다 할 수 있다고 해보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게임의 모습이 TV쇼처럼 보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트레이와 맷도 동의했다.

“그게 우리 일입니다.” 어크하트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돌아가서 TV 쇼처럼 보이는 걸 만들어보죠.”

그래서 어크하트는 팀을 모아서 1주일 동안 기초적인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사우스 파크 디지털 스튜디오로부터 사우스 파크 제작에 쓰이는 도화지를 받아 폴리곤으로 들어찬 인터랙티브 세계로 바꾸어놓았다.

“만든 걸 그 쪽 스튜디오에 보여줫습니다. 방향은 제대로 잡았다면서 조금만 더 하면 되겠다더군요.”

이 때까지 옵시디언은 돈을 받지 않은 상태였지만 사우스 파크 RPG라는 가능성은 뿌리치기 어려웠다. 그래서 어크하트는 계속 열심히 작업을 하기로 했다. TV쇼에서 나오는 집을 배경으로 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플레이어는 평범한 아이인데 트리거 버튼을 누르면 인종이나 복장을 바꿀 수 있었다. 거실로 들어가면 속옷을 입은 랜디 마쉬가 기타 히어로를 플레이하고 있는 게 보인다. 부엌으로 가서 주걱을 집어들면 도끼로 바뀌고, 휘둘러서 물건을 부술 수 있다.

많은 게 들어간 건 아니었지만 그것이 게임의 시작이었다.

“맷과 트레이에게 가지고 갔습니다. 트레이는 컨트롤러를 쥐어보더니 ‘끝내주네요!’ 소리쳤습니다. 맷은 화면을 가까이 보더니 ‘이거 그 도화지 맞죠!’ 라며 소리치더군요. 그러더니 한 번 해보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계약서를 썼고 RPG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동안 옵시디언은 사우스 파크 팀과 직접 일하면서 그들의 모회사인 비아콤으로부터 자금을 받았다. 하지만 2011년 말, 그들은 더 경험 있는 게임 퍼블리셔를 찾기로 결정했다. 몇몇 회사가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결국 THQ를 선택했다.

얼마 되지 않아 THQ가 굉장한 곤경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근 노스 캐롤라이나라는 코드네임의 프로젝트를 취소하며 올해 초 30명의 인원을 해고해야만 했던 옵시디언에게 특히나 곤란한 일이었다. 한동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사람들을 거리로 내보내야 한다는 건 지랄맞은 일이죠.” 어크하트가 말했다.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계속 기다렸습니다. 그 쪽에서 돈을 줄까, 안 줄까. 그게 걱정이었죠.”

하지만 게임은 훌륭하게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옵시디언은 그들이 과거에 개발한 RPG들과 달리 사우스 파크에서는 턴제 전투로 가기로 결정했고, TV쇼와 어울리는 독창적인 공격과 마법, 소환을 만들어내는 데 상당한 시간을 들였다. 트레이와 맷이 각본 전체를 썼다. 게임에 대한 초기의 반응은 굉장했다. THQ가 몇 달 안가서 가라앉는다 해도 이 게임에 대한 권리를 얻기 위해 퍼블리셔들이 엄청난 경쟁을 벌이리라는 걸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옵시디언에게 2012년 말과 2012년 초는 낮과 밤의 차이였다.

차세대급 취소

올해 초 취소되면서 정리해고를 감행하게 만들었던 노스 캐롤라이나에 대해 물어보자 어크하트는 많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옵시디언이 디자인하고 창작하는 거대한 3인칭 오픈월드 게임이었다. 그들은 2011년 아이디어와 컨셉 아트로 들어찬 멋진 책자를 들고 여러 퍼블리셔에게 게임을 제안했었다. 어크하트는 그 이상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결국 몇몇 퍼블리셔로 좁혀졌습니다. 그리고 한 퍼블리셔와 계약을 했죠. 하지만 불행하게도 프로젝트는 더이상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그게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니만큼 자세하게 말을 꺼내기는 어렵습니다. 정말 아쉬워요. 진짜 멋진 게임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게임은 취소되었고 옵시디언은 많은 직원을 정리해고해야 했다. (올해 초 나는 노스 캐롤라이나가 마이크로소프트가 퍼블리싱하는 차세대 엑스박스용 퍼스트 파티 게임이라는 소문을 보도했었다. 어크하트는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게임은 취소된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하지만 옵시디언 같은 독립 개발사에게는 지난 10년간 익숙해진 일이었다. 모두들 절대 현실화되지 못할 게임에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인다.

옵시디언이 편안한 위치가 된 지금도 그들은 생존을 위해 지리멸렬하게 가야 한다.

“모두들 휴가에서 돌아오고 나면 저는 다음에 할 것을 찾아나서고 있습니다.” 어크하트는 말했다. “보통 저희는 항상 제안을 하는 입장입니다. 지금 어떤 퍼블리셔를 위해 만드는 것도 만들어지지 못할 수도 있죠. 사람들이 이 부분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퍼블리셔와 개발사가 계약을 할 때는 항상 ‘편의에 따라 취소’할 수 있단 부분이 있습니다. 내일이라도 이제 그 프로젝트는 더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연락이 올 수 있지요.”

그런 일이 벌어질 때면 옵시디언은 어디선가 지출을 줄이려고 한다. 그래도 아홉 달 동안 모든 직원들의 월급을 지불할 정도는 못 된다. 어크하트가 말하길 아홉 달은 보통 새로운 계약을 따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라고 한다.

“어렵습니다.” 그가 말했다. “75명이 소속된 팀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죠. 그러면 내일부터는 할 일이 없는 75명이 생기는 겁니다. 그럼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12년 초는 옵시디언이나 그들 같은 독립 개발사들에게는 어려운 시기였다. 하지만 그 한 해 동안 뭔가 상황이 변했다. 킥스타터는 게임업계의 혁명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옵시디언 같은 회사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다. 어크하트의 팀은 올 한 해 가장 흥분되는 성공 스토리의 주역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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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크하트의 사무실에서 발견한 물건들. 발더스 게이트 에일과 통조림 게코가 있다.

30일, 400만 달러

태평양시로 2012년 9월 14일. 옵시디언에게는 광란의 시간이었다.

그들은 막 킥스타터에 오리지널 아이소메트릭 RPG 프로젝트 이터니티를 런칭했었다. 사무실에 있는 누구도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팬들이 몰려와 옵시디언이 90년대 말에 만들었던 게임들의 정신적 계승작이 될 프로젝트를 지지해주며 돈을 기부했다. 그들은 한 시간에 수천달러를 모았다. 회사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수준의 성공이었다.

“사무실을 돌아다녀봤는데 사람들이 다 미쳐있더군요.” 어크하트가 말했다. “정말 미쳤습니다. 누구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5분 쯤 지나면 또 5,000달러가 늘어났습니다.”

오후 5시, 어크하트는 그 날 누구도 제대로 일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모두 거리에 술을 마시러 나갔다. 그들은 자리에 앉아서 계속 전화를 확인했다. 계속 킥스타터를 쳐다보면서 수치를 확인했다. 30분마다 25,000달러가 늘어났다.

그날, 그들은 70만 달러를 모았다.

“다음 날 딸과 아침을 먹고 있었습니다.” 어크하트가 말했다. “아홉 살이에요. 그런데 나도 아내도 굉장히 신이 나있으니까 궁금해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더군요. 아내가, ‘아빠가 이런 걸 했단다’ 하면서 영상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더니 제 딸은, ‘우리도 아빠한테 돈 줄 수 있어요?’ 라더군요.”

어크하트가 아침을 먹는 사이 금액은 100만 달러에 도달했다. 이틀이 되어 목표치인 120만 달러를 달성했다. 업데이트를 하고 인터뷰를 하고 늦은 밤까지 킥스타터에 댓글을 달며 보냈던 30일이 지나자 옵시디언은 400만 달러에 가까운 금액을 얻었다.

마치 동화의 결말 같았다. 서두른 프로젝트와 갑작스런 취소, 잔혹한 정리해고를 겪은 세월 끝에, 옵시디언은 갑자기 스스로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게 되었다. 전망 좋은 게임이 두 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몇 달 전까지 업계 주요 퍼블리셔가 옵시디언의 문을 두드렸다. 어크하트는 베데스다와 유비소프트, 워너 브로스, 루카스아츠 같은 회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하지만 모두가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의 팬은 아니다. 어떤 RPG 팬들은 그들이 네버윈터 나이츠와 폴아웃 같은 시리즈를 다룬 방식을 혐오한다. 어떤 사람들은 서두르고 버그가득한 소프트웨어를 계속 내는 걸 보고 회사에 대한 환상을 지워버렸다. 어떻게 보면 프로젝트 이터니티와 같은 성공은 시험대와도 같다. 사우스 파크 RPG와 킥스타터 현상 사이에서 이 개발사에 대한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어크하트는 그런 압박감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앞으로의 2년을 낙관했다. “2013년과 2014년은 옵시디언에게 굉장한 해가 될 겁니다. 게임계 전반으로도 그렇고요.”

꿈에 그리는 프로젝트도 있다. 차세대기로 내는 구공화국의 기사단 3다.

“차세대기에서 해보는 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런 게임이 나오지 않는다면 게이머로서도 실망스러울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옵시디언에게는 많은 꿈의 프로젝트가 있다. 90명이 있는 스튜디오가 모두 이루기에는 많은 꿈이다. 지금 그들에겐 해야 할 일이 많다. 사우스 파크가 기대를 충족해야 한다. 프로젝트 이터니티는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기대를 충족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버그에서 자유로운 잘 다듬어진 게임을 낼 수 있음을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옵시디언 생존기”의 3개의 생각

  1. 옵시디언 참…

    내놓는 작품마다 2% 부족한 버그덩어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대하게 되는 회사죠.

    부디 이터니티만큼은 여유도 있고 돈도 있으니 제대로 된 역대급 물건을 하나 뽑아줬으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1. 대부분의 문제는 퍼블리셔 덕이긴 하죠.
      뉴베가스는 1년 6개월만 준데다가 버그도 무시하고 내라는 결과였고
      구공기2도 개발기간에 문제가 있었고
      알파 프로토콜은 지원에 좀 문제가 있었던거 같네요
      하나 다른게 있다면 던전시즈3 정도.
      이건 별 문제는 없는데 전작을 너무 고려 안하고
      PC판은 영 그렇다는게 문제…
      그럼에도 얘네들 게임들은 포텐셜이 엄청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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